플레이어가 게임종료를 하면,
프리스크는 그 순간부터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처음에 프리스크는 처음으로 자신의 몸도 선택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감격에 겨워 돌아다닌다. 드디어 자유야! 이제 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 파피루스와 정말 친한 친구가 되기도 하고, 괴물들에게 자신의 감정에 대해 호소하며 싸움을 피하기도 하고. 마음이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찬 프리스크가 해맑게 웃는 순간 모든 화면이 검게 변해버린다. 플레이어가 접속하여 모든 것을 되돌려 로드한 것. 프리스크가 한 모든 행동은 없던 일이 되었고 모두가 아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어지는 수많은 죽음과 부활. 만들어낸 기억의 허망된 소멸. 처음의 의욕도 점차 반복되어가는 세이브와 로드에 없어지고, 프리스크는 더 이상 의지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처음에 그 자유로운 몸을 가졌을 땐 표정변화도 풍부했지만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플레이어가 다루는 무표정의 프리스크에게 가까워지는 것. 시간을 되돌리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가지고만 있는 프리스크. 아이는 홀로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아무도 죽이지 않는 결말을 본지 벌써 수여차례. 모두와 친구인 것은 언제나 즐겁지만, 그만큼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시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끔찍하다.
플레이어가 두렵고 자신의 상황이 괴롭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 덕분에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그런 프리스크는 감시하는 샌즈는 의아함을 갖는다. 항상 무표정만을 유지하며 거침없이 움직이던 아이가 어느 특정 지점에서 갑자기 우울한 표정과 함께 멍하니 앉아있기만 한 것. 다가가 의아함을 해소한 적도 있겠지만, 어차피 그것도 플레이어가 돌아오면 로드와 함께 희미한 자국만 남은 채 사라져버리는 것. 어느 순간 샌즈도 그 무의미한 반복에 아이를 바라보기만 해도 뜻모를 분노를 느끼며, 심판의 날 때까지 절대로 사적인 접촉을 많이 하려 하지 않으면 좋겠다.
수십여차례의 불살 엔딩 위 지상. 플레이어가 마침내 게임을 놓아주기로 한 순간. 프리스크와 샌즈 둘 다 언제 이 세상이 지하로 처박힐지 모른다. 항상 꿋꿋하게 모두를 구하던 아이가 지상으로 올라온 순간부터 무기력하고 가끔씩은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에 떠는 것을 보고 다들 걱정했으면 좋겠다. 샌즈는 나약해진 프리스크에게 혐오를 느꼈으면 좋겠다. 네가 힘을 가지고 있잖아, 네가 끝없이 시간을 되돌리고 있잖아. 그러면서 그 태도는 뭐야? 뭘 두려워하는 거야? 샌즈가 본 프리스크는 그저 자신의 방 열쇠를 얻기 위해서 로드를 몇 번이나 하는 철 없는 아이이자 괴로움의 원인일 뿐이었으니까.
때문에 언제 인간이 리셋할지 몰라 겉으론 웃으면서도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샌즈와 그 시선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프리스크. 겉으로 보기엔 그저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고 담담한 일상을 보내는 그들이지만 서로 속은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져 썩어가고 있는. 그러다 어느 순간 샌즈와 프리스크가 싸웠으면 좋겠다. 프리스크가 크게 아팠던 어느 날 밤, 토리엘의 부탁으로 그 곁을 지키던 샌즈가 잠든 듯한 프리스크를 바라보며 무미건조하게 어차피 네가 질리면 다 되돌아갈텐데, 속삭인 것. 그 말을 듣자마자 프리스크가 순간 샌즈의 멱살을 잡고 엎어버렸으면 좋겠다. 샌즈는 바로 그런 프리스크를 제압하려하지만 울고 있는 프리스크를 보면서 순간 멈칫하는 것. 내가 아냐…나도… 알아들을 수도 없을 정도로 웅얼거리는 짓이겨진 목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던 샌즈가 프리스크의 등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으면 좋겠다. 토닥여주는 다정함 없이, 병실 창가에서 아스라이 바람이 내리고, 별빛을 받은 아이와 해골은 서로를 껴안고. 아무 말 없는 위로의 시간이 지나자 샌즈가 프리스크에게 질문했으면 좋겠다. …네가 시간을 되돌리는 게 아니야?
그 말에 어느새 진정한 프리스크가 샌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으면 좋겠다. 모두와 친구가 된 이야기. 지상으로 올라와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나자 꽃밭으로 돌아가 있던 자신. 수없이 마주친 친구들과 그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선택이 강요되는 인생. 더 이상 노력을 해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 그 말들이 샌즈에게 비수처럼 박혔으면 좋겠다. 바로 자기의 이야기나 다름없으니까. 그런 아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겹쳐보며 동질감과 조금의 동족혐오를 느끼며 허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렇게 된다면 아이를 견제해보아도 소용없는 것이 아닌가. 하기사, 저렇게 어린 아이가 모든 행복을 손에 넣었는데 똑같은 시간을 반복할 이유는 많지 않다. 언제나 그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거나, 그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호기심을 해결하고 싶었다거나, 그도 아니었다면… 이렇듯 타의였다거나. 그야말로 신이나 다름없는 미지의 존재에 모든 것이 달린 것일 뿐. 아이는 인형사가 돌아오면 조종당하는 인형이며, 자신들은 그곳의 소품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더 담담하게 질문했으면 좋겠다.
어째서…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프리스크가 말을 이어버렸으면 좋겠다. 어째서 너에게 말한 적 없었냐고? 고개를 끄덕이는 샌즈에게 네가 물은 적 없잖아. 그리고…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묻어버리는 프리스크. 그것 뿐만은 아니라고 당신은 속으로 생각한다. 네가 싫어할 테니까. 의심받는 것을 넘어서서 미움 받을 테니까.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이 이룬 것이 아니라면, 이 모든 일의 매개체이면서도 자신에게 그러한 힘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면 경멸밖에 받지 못할 지도 몰랐다고 생각했잖아. 안그래?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샌즈는 처음으로 아이를 다독여준다. “야, 모든 게 우리 탓이 아니라면… 내가 널 왜 미워하겠어, 프리스크.” 그동안 내가 너무 의식하긴 했나보다.
…프리스크. 내뱉은 샌즈의 말에 커지는 프리스크의 눈동자, 그게 지상으로 올라오고 나서 처음으로 샌즈에게 프리스크라는 이름을 불린 거였다면 좋겠다. 아이는 그동안 했던 모든 공연을 기억하는 인형이었고, 해골은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나가더라도 다시 깨끗이 닦여 상자로 돌아갈 소품이었다. 공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인형사 밖에 없다면, 그 누군가가 언젠가 이 세상의 공연에게서 손을 놓아줄 수 도 있지 않을까, 장난감과 소품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될 때, 그 다음 부턴… (사자로 보였던 목걸이 매달린 가면 쓴 생쥐, 쳇바퀴를 탈출하지만 또다시 잡혀들어가는 생쥐)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번개가 내리쳐서 맞아죽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럼 그 사람을 패배자라고 불러야할까? 아아니. 피해자라면 모를까, 패배자는 아니야. 승리자가 없는 데도, 우린 그런 존재인거야. 우린 그들을 막을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지. 그렇다면… heh, 제발 벼락이 내려치지 않도록 기원제라도 지내야할까? 뭐, 그저 맑은 하늘이 계속 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거겠지.”
아무런 감상없이 이러한 대화를 나누는 그들. 둘 다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더 이상 자신 스스로 무언가 하기엔 너무 닳아버린 것. 그것을 깨닫고 둘 다 황폐한 웃음을 터트렸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역시 피해자란 이름은 싫어. 지상-허무주의자 클럽은 어때, 샌즈?” “hmm.” “좋아, 찬성한 거지? 그럼 이제 내가 회장이고 샌즈는 명예 회원이야.” “어째서?” 왜냐면, 언젠가 다시 되돌아갔을 땐 샌즈는… 잊기라도 하지, 나는 잊을 수도 없으니 다시 가입시켜줘야 하잖아? …그것도 그렇네. 낮게 깔린 샌즈의 목소리에 또다시 웃음을 터트리다 기침을 터트리는 프리스크.
게다가, 결국엔 그 하늘을 선물해준 것도 그들이니까… 웅얼거리는 프리스크의 목소리. 그리고 샌즈가 그런 프리스크 이마위에 손을 얹고 말을 이었으면 좋겠다. “그들을 가해자라 부르긴 싫다 이거군. 스톡홀름 증후군이기라도 한 거야, 꼬맹이?” 몸이 조종당하면서 강제로 모든 것을 보아왔음에도, 그 상황에서도 선량함을 잃지 않은 아이. 더 이상 같은 피해자인 이 아이를 탓할 순 없다.
정말로 그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만이 목적이었다면, 시간을 그렇게 수도 없이 되돌리진 않았을 거야… 그렇지만 네 말도 맞아. 그들 덕에 우리는 이 곳에 도달할 수 있었지. 그렇지만, 그들이 없었더라도 우리는 이 곳에 도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을지라도, 언젠간 우리들만의 힘으로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말야… 그저, 그저. “샌즈.” 자신의 눈을 덮은 샌즈의 뼈다귀 손가락에 손을 얹으면서 상념을 막는 프리스크. “맞아,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지금 여기에 있지도 않은 자들에 대해 말하는 건 우습지. 그렇지만.”
그들은 그저… 아무도 아냐. 시간을 되돌려? 그렇다면 그들이 이룬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거지. 의미 있던 것들은 모두 시공간의 틈새로 뜯겨져 나갔을 테니까. 이 세계를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존재가 정작 우리에게 있어선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는 거야. 아이러니 하지않아?” 아이에겐, 더군다나 잠에 빠져들고 있는 아이에게는 어려운 이야기다. 볼멘소리로 웅얼거리는 아이의 말에 샌즈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만 별을 선물 받은 지금은, 글쎄, 지금처럼 미래를 더 이상 빼앗기지 않을 시공을 남겨준다면야… ‘아무도’ 그들을 모를 지라도, 적어도 한 괴물과 한 인간이 감사 인사는 전해줄 수 있겠지. 안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와 조심스레 손을 빼내는 해골. “뭐, 지금 듣고 있고 있는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건 무례한 행동이니까. 내일 보자, 프리스크.” 잠이 든 아이를 둔 채로 샌즈는 병실 문손잡이를 잡고 돌린다. 방안에는 별빛과 잠이 든 프리스크만이 남았다.
…그래, 이곳에는 이제 저들 외엔 아무도 없다.
자, 그럼. 우리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잘 가.
nobody.
-
옛날에 써두었던 싶다글 백업
그냥 파일로 첨부할까 하다가 수정이 귀찮을 것 같아서 복붙했다
언젠가 장편으로 써보고 싶은 소재. 모두가 피해자. nobody는 플레이어? 침대에서 샌즈가 프리스크의 감정을 끄집어내는 대사는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싶다. 우선 막연히 저런 뉘앙스의 말 정도로 생각중. 후반부 샌즈가 속삭이는 말들을 좀 더 늘리고 자세하게 적을 수 있지 않을까. 마무리를 플레이어의 접속과 함께 but nobody came. 으로 끝내도 좋을 것 같지만... 한번쯤은 샌즈가 그나마 나은 엔딩을 맞이해도 좋을 것 같아서. 프리스크와 샌즈가 저렇게 대화를 나눈 것도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이고, 어차피 이대로 끝나도 그들에겐 평생 불안감이 남아있을테니, 아직까지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희망은 이정도. 소재글이라지만 너무 포괄적으로 적은 것 같아 아쉽다. 다듬을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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