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단편

07/09 함께 (메필버)

웨하스맛탕 2014. 7. 18. 14:54

" 너를 증오해. "

수십번, 수백번 반복해서 들었던 말. 그 말을 할 때 그의 눈은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빛난다. 그리고 그 사실은 언제나 나를 기쁘게 만들어주기에, 나는 웃었다.

키득거리는 나를 노려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 잿더미를 짓밟으며 걸어나갔다. 끝없이 반복되는 상황.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적막이 흐르면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나를 저주하는 말을 내뱉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홀로 남는 것이 두려워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모든걸 재로 만들어버린 존재에게서 위안을 얻는 소년이라니, 우습기 짝이 없어.
그 유약함에 경의를 표하며, 나는 조그만 장난을 쳐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나를 죽이면 되지 않나.

멈칫하는 그의 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그의 손이 빛나고 날카로운 건물 잔해들이 떠오르는걸 지나친다. 그의 손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뭘 망설이는 건가? 너의 모든 걸 없앤 원흉이 눈앞에 있다. 이 세상, 평화로운 미래, 수많은 사람들을 불태워버린 네 원수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아? 나를 죽여봐, 실버. 

저 가엾은 소년의 머리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날개가 찢어져 떨고 있는 새마냥 불안해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고도 아름다워서 웃음이 난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그에게서 시선을 고정시킨채, 나는 친절히, 그리고 상냥하게 말을 건넨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여전히 그는 대답이 없다.

 네가 지금 들이마시고 있는 이 잿가루 속엔 불타버린 황녀의 시체도 있을거다. 

...닥쳐! 그는 손을 휘둘렀다. 그의 눈동자엔 눈물이 맺혀 휘날린다. 날카로운 아스팔트 조각들이 맹렬히 나를 향해 쏘아져온다. 죽여버릴꺼야, 죽일꺼라고! 그가 소리친다. 동공을 찌를듯이 날아오는 비수들 너머로 나를 향해 울부짖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울면서 고개를 휘젓던 그는 이내 내 쪽을 바라보았고, 시선이 마주친 그에게 나는 눈웃음을 지었다.

툭 투욱 툭.

허무하게 짝이 없이 잔해들은 무너져내린다. 빛나던 손에선 빛이 사라졌고 그 또한 무너졌다. 다리가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기는 그의 턱을 붙잡고 내 쪽으로 들어올린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증오와 안도감이 뒤섞인 노란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 눈물이 흐르는 동공에는 오로지 내 모습만이 가득하다. 드디어 네가 나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하게 되었다는 만족감에 나는 손가락으로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이제 네 곁에 남아 있는건 나 밖에 없어.

그의 떨림이 심해진다. 내 손을 떨쳐내지 않은 채 그저 눈물만을 흘리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난 항상 네 곁에 있을거다.

잘됐지않아? 상처입은 짐승처럼 입을 벌리고 신음을 내뱉는 그에게 빙긋이 미소짓는다.
앞으로도, 영원히.


*


감정에 대한 인식은 있지만 이해는 할 수 없는 메필레스.

메필레스 마저 없어지면 증오할 대상 조차 없이 홀로 남는 것이 두려운 실버.

미묘한 관계.